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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디자인 표면/미정과 정의

미정과 정의의 좋고 나쁨이 있을까?

by release-g 2024. 5. 14.

 

일종의 남자라서, 여자라서 나쁘다는 편견이나 태도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특성일 뿐입니다. 그 특성을 받아들이면 단점이나 장점이 아닌, 하나의 특징으로 여길 수 있죠.

정의, 미정, 풀 미정, 즉정 등은 각각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의는 고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생명력이라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로 좁혀진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열려 있는 것은 다양한 가능성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고정된 것이 없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을 수도 있죠.

이러한 특성들을 수용하면 다채로운 면을 활용할 수 있게 되지만, 저항하면 그 특징이 꽃피울 기회를 제한하게 됩니다. 정의와 미정의 꽃피어남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그 특성에 대한 수용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휴먼디자인의 근간에는 자기사랑과 내맡김이라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감정 미정의 경우, 고정된 감정이 없고 타인의 감정을 증폭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는 휘둘림과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깨어 있고 수용하는 자세로 임한다면 타인의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가이드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떤 측면에 메이느냐, 혹은 양쪽 측면을 모두 피워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마음가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사랑, 자기 수용, 내맡김, 전략과 권위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드러나면서 협응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어떤 특성을 알고, 그것을 마인드로 의지로 구체화하려고 하면.. 국소적으로 작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것은 하나의 측면이고 온 존재가 세상속에서 협응하며 작동해야 하는데, 생각으로는 그중 일부분을 구체화 할 수 있을 뿐이죠. 

휴먼디자인을 통해 자신의 디자인을 들여다보면, 자신을 얼마나 혐오했는지 인식하게 되고, 자기 수용의 과정이 일어납니다. 이를 통해 자기 사랑과 함께 존재의 다양한 측면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 실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난 리플렉터라서, 난 미정이라서, 난 프로젝터니까, 난 xx니까 이래서 힘들어, 안 돼, 저게 부러워"라는 생각은 모두 일종의 자기혐오입니다. 하지만 "아, 내가 이런 모습에 저항하고 있었네. 여기에 이런 가능성이 있었구나. 나의 역학에 내맡겨 볼까?"라는 자각을 통해 자신의 디자인을 삶에서 구체화 시켜나갈 수 있겠죠. 

여기 적은 내용은 이 글 속에서의 진실이며,  공명되는 부분을 받아들이고, 삶에서 관찰하고 자각하면서 자신의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실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