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비론이란 무엇인가? A도 잘못, B도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양비론은 양자를 함께 질책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자기의 도덕적 우위를 나타내려는 위선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양비론을 '착취의 논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양자에게 공히 도덕적 정당성을 툴취해 오기 때문이다.
양비론은 기회주의적 보신책이라는 견해도 있다. 말 그대로 '양비'함으로써 일방적 공격이 주는 위험성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 깁갑수 진보적 글쓰기 중에서 -
현실 정치에서도 이런 양비론의 폐해를 자주 목격합니다. 여당과 야당이 정치 현알을 놓고 심하게 충돌할 경우 양비론은 어김없이 타협할 줄 모르는 한국 정치라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변화를 원하는 쪽이나 권력에 도전하는 측면에서는 양비론을 잘 내세우지 않는데 비해,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권력자들은 자주 양비론을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양비론은 결과적으로 기득권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양비론은 도전 세력이 던지는 변화의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결국 양비론은 비판자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기존 권력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 언어의 배반
"싸우는 놈들은 다 똑같다" 양비론은 비판적인 듯 보여도 실은 정치적 체념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며 정치적 도피이다. 정치 현상을 분해하여 파고들지 못하기에, 정치적 세계에서 소외된 자가 책임감 없이 정치와 권력을 구분하지도 않을 채 싸잡아 비판하며 도덕적 우위에서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양비론은 둔감한 정치적 사고를 양산할 뿐이며, 양비론 식의 중립성은 중립적이기에 기성의 지배 권력에 봉사하는 결과를 낳는다.
- 오늘의 문화비평 81호 2011년 여름호에서
논술 시험에서 양비론 주장을 편다면, 채점자는 지원자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을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다. 양비론은 설득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가. 양극단의 의견을 모두 긍정하는 자에게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양비론을 택하는 건 그래서 어리석다.
- 뽑히는 글쓰기 중에서 -
마지막의 글은 양시론에 관한 이야기기는 하다. 그러나 맥락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양비론은 탓하기 게임인듯 하다. 탓을 함으로서 이것도 잘못되었고 저것도 잘못되었다 하면서 책임전가 폭탄돌리기 게임.
그럼으로서 책임지지 않고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곳에 변화를 멈추는 것에 대한 것.
물론 양쪽다 들여다 볼 필요는 있겠지만 마지막 나오는 말에서도 그렇다는 것은 그저 도망치는 것 밖에 안되는 것 같다.
언론에서 애매하게 이쪽도 잘못했지만 저쪽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물타기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양비론
나도 잘못했지만 재도 잘못했잔아요.. 하면서 숨고르기 한다는 느낌이랄까.
있는 그대로 깨어서 보고 내가 어떤 방향성으로 갈지 선택하는 것 그것이 변화의 길이다.
일상세계에는 참으로 다양한 규율과 제도들이 작동한다. 그러한 체제의 제도들 앞에 설 때 일부러라도 우리는 잠시 스스로의 판단을 흐린다. 그러고서는 그러한 흐려짐을 순응이나 적응인 것으로 인식한다. 차라리 그게 맘 편할 수 있으며 또한 어릴적부터 응당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에히리 프롬은 그러한 심리상태를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했다. 인간 존재는 자기에게 자유가 주어져도 그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마음,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고 싶어하는 마음. 그런 것이 인간 존재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함'은 그러한 매 순간 앞에서 명료히 깨어있음이다. 스스로 판단함이다. 남들 모두가 그러하다고 해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판단해서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 탁양현의 주역철학 중에서